
70년 간 영화계를 지키며 한국영화의 상징이자 아이콘 그리고 페르소나로 불렸다. 한국영화가 변화를 맞이하는 길목마다 그가 있었기에 모두가 그를 한국영화 이정표로 보고 따랐다. 그 오랜 세월 실력과 인성 모두 한결 같아서 동료 선후배 영화인 누구 하나 그를 우러러 보지 않은 이 없었다. 게다가 어떤 관객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우로는 유일무이한 타이틀인 국민배우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살았다. 드라마·연극·뮤지컬 한 편 하지 않고 독야청청 영화만 찍었고 그렇게 약 140편을 남겼다. 어린 아이부터 노년의 인물까지 인생의 모든 시점을 배역으로 소화해 온 '국민 배우'다. 연기력은 물론 스캔들 하나 없는 품행, 작품과 후배들을 대하는 따뜻한 태도로 사랑받았다. 그의 삶은 스크린을 떠나서는 언급하기 어렵다. 안성기의 빼곡한 필모그래피는 한국 영화계의 계보와도 겹쳐진다. 1952년생인 안성기는 5세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10대의 반항》으로 7세 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영화 《하녀》와 《모자초》 등을 통해 다양한 역할을 선보였다.투병 이후에도 영화 6편을 더 내놨지만 2019년에 나온 '사자'가 사실상 우리가 알던 안성기의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는 독특한 장르물인 '사자'에서 구마 사제 역을 맡은 이유에 대해 "어린 친구들은 이제 나를 잘 모른다. 나이 든 사람한테 관심을 잘 주지도 않을 테니. 이 작품을 통해 아직도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다. 장지는 양평별그리다다.
'국민 배우' 안성기 별세…
나우경제기자 2026-01-05 09:45:37

70년 간 영화계를 지키며 한국영화의 상징이자 아이콘 그리고 페르소나로 불렸다. 한국영화가 변화를 맞이하는 길목마다 그가 있었기에 모두가 그를 한국영화 이정표로 보고 따랐다. 그 오랜 세월 실력과 인성 모두 한결 같아서 동료 선후배 영화인 누구 하나 그를 우러러 보지 않은 이 없었다. 게다가 어떤 관객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우로는 유일무이한 타이틀인 국민배우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살았다. 드라마·연극·뮤지컬 한 편 하지 않고 독야청청 영화만 찍었고 그렇게 약 140편을 남겼다. 어린 아이부터 노년의 인물까지 인생의 모든 시점을 배역으로 소화해 온 '국민 배우'다. 연기력은 물론 스캔들 하나 없는 품행, 작품과 후배들을 대하는 따뜻한 태도로 사랑받았다. 그의 삶은 스크린을 떠나서는 언급하기 어렵다. 안성기의 빼곡한 필모그래피는 한국 영화계의 계보와도 겹쳐진다. 1952년생인 안성기는 5세이던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했다. 《10대의 반항》으로 7세 때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영화 《하녀》와 《모자초》 등을 통해 다양한 역할을 선보였다.투병 이후에도 영화 6편을 더 내놨지만 2019년에 나온 '사자'가 사실상 우리가 알던 안성기의 모습을 보여준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는 독특한 장르물인 '사자'에서 구마 사제 역을 맡은 이유에 대해 "어린 친구들은 이제 나를 잘 모른다. 나이 든 사람한테 관심을 잘 주지도 않을 테니. 이 작품을 통해 아직도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다. 장지는 양평별그리다다.